단계 7: Study Chapter 3

     

누가복음 3장의 의미 살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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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예수의 길을 예비하는 요한

1. 티베리우스 가이사 다스리는 제15년에 본디오 빌라도는 유대의 총독이 되고 헤롯은 갈릴리의 총독이 되며 그의 아우 빌립은 이두레아와 트라코니아 지방의 총독이 되고 아빌레네의 총독 리사니아가 되니2.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의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광야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하니라.

3. 그가 요르단 온 지방에 두루 다니시며 죄 사함을 얻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시니라.

4. 선지자 이사야의 말의 책에 기록된 대로,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가 '너희는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그 길을 곧게 하라'고 하였느니라.".

5. 모든 골짜기가 가득 차고 모든 산과 언덕이 낮아지며 굽은 것이 곧게 되며 거친 길이 평탄하게 되리라'고 외쳤습니다.

6.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리라."

<7. 그리고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러 나온 무리들에게 이르시되, "독사의 무리들아, 누가 너희에게 장차 올 진노를 피하여 도망할 것을 보여 주었느냐?"라고 말씀하셨다.

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스스로 말하기를 "우리가 아브라함을 [우리] 조상으로 삼았다"고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은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에게 자손을 일으키실 수 있느니라.

9. 또한 도끼가 이미 나무 뿌리에 놓였으므로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모두 찍혀 불에 던져집니다.".

10. 군중이 예수께 물어 이르되, "그러면 우리가 어찌할꼬?" 11.

11.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두 벌 옷이 있는 자는 없는 자에게 나누어 주고,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와 같이 하라."고 하셨다.

12. 세리들도 세례를 받으러 와서 이르되, "선생님,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요?"하고 묻더라.

13.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가르침을 받은 것 이상은 하지 말라."고 하셨다.

14. 병사들도 그에게 물었다."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아무에게도 폭력을 행사하지 말고,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너희의 품삯에 만족하라."라고 하셨다.

15. 사람들이 기대에 차서, 요한이 그리스도인지 아닌지, 모두 마음속으로 추리하였다.

16.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참으로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지만, 나보다 더 강한 이, 내가 그 신발 끈을 풀기에 합당치 않은 이가 오시리니,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다.

17. 그분의 손에 부채가 있으니, 그분은 바닥을 깨끗이 하고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로 태우시리라.".

18. 그리고 참으로 다른 많은 일로 권면하여 백성에게 복음을 전하였다."18.

19. 그러나 족장 헤롯은 그의 아우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스와 헤롯이 행한 모든 악으로 말미암아 그에게 책망을 받으니, 20.

20. 여기에 더하여 요한을 감옥에 가두었더라."21.

예수님 탄생 당시 종교는 진정한 의미를 잃었습니다. 종교는 더 이상 사람들을 하나님이나 서로 연결하는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종교는 하나님의 사랑의 본성에 대한 진정한 이해 대신 모세가 전수한 율법의 마지막 글자까지 순종하지 않는 모든 사람을 벌하는 폭군처럼 분노하고 복수심에 가득 찬 존재로 묘사했습니다. 간단히 말해, 하나님은 자신에게 호의적인 사람들에게는 선을 베풀고 반대하는 사람들에게는 악을 행하는 절대적인 독재자로 여겨졌습니다. 1

히브리어 성경의 여러 구절에 반영된 이 하나님에 대한 생각은 당시 사람들이 신에게 투영한 인간의 속성을 슬프지만 정확하게 묘사한 것입니다. 이 관념은 그 시대의 인간 상태를 사실적으로 보여 주지만, 우리는 이제 그것이 하나님에 대해 전적으로 부정확한 관념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에 대한 이러한 관념은 당시 인간의 상상력을 사로잡았기 때문에 그것을 없앨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 어떤 계시나 하늘에서 천둥이 치거나 천사의 개입도 어둠을 뚫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점차 거짓된 생각에서 벗어나 하나님에 대한 참된 생각으로 인도 될 수 있도록 친히 지상에 오셔서 인간의 육신을 입으 셨습니다. 그분은 신성한 사랑의 본질이 선택적이지 않으며 그 누구도 정죄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오셨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전체> 인류를 향한 순수한 사랑, 즉 이웃에 대한 진정한 사랑입니다. 2

안타깝게도 예수님 탄생 당시에는 말씀이 고양과 영감을 주는 데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대신 종교 지도자들은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심어주고 영적인 속박을 유지하기 위해 말씀을 사용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진노와 인간의 사악한 상태 사이의 인간 중개자 역할을 자처했습니다. 이 부패한 종교 지도자들은 사람들의 두려움과 무지를 이용하여 사람들이 구원을 구매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고안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 부패한 시스템의 중요한 측면은 모든 거래가 사람들을 대신하여 기도를 드리고, 번제를 드리고, 의식 세척을 수행하고, 사람들이 성전 재무부에 관대하게 기부하도록 장려하는 종교 지도자를 거쳐야한다는 것이 었습니다. 또한 종교 지도자들은 인간이 만든 전통과 정교한 의식을 확립하여 하나님의 계명보다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그들은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과 자비를 잃어버렸습니다. 여러 가지 면에서 당시의 종교 상황은 황량하고 메마른 광야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이때 사가랴의 아들 요한은 진리를 선포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지혜롭고 강해졌습니다. 그는 오래 전 이사야의 예언대로 왔습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 주님의 길을 준비하라. 그분의 길을 곧게 만드십시오.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언덕이 낮아질 것이며, 굽은 곳은 곧게 펴지고 거친 길은 평탄해질 것이다. 그리고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게 될 것입니다."(이사야 3:4-6).

세례 요한의 탄생은 모든 인류의 삶에 전환점이 되는 순간입니다. 말씀이 진실로 울려 퍼지고 우리 존재의 가장 핵심적인 무언가를 건드리는 순간입니다. 그것은 마치 우리 삶의 황량한 광야에서 진리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과 같습니다. 마치 메마르고 건조한 황무지에서 샘솟는 생수의 샘과 같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사고방식에 혁명을 가져오는 강력한 문자적 가르침과 함께 우리 안에서 살아 숨 쉬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의 문자적 가르침은 우리에게 심오한 영향을 미치기 시작합니다. 말씀은 차가운 시냇물에 몸을 담그는 것처럼 우리를 깨우고, 우리의 삶을 변화시켜야 할 필요성에 대해 직접적으로 이야기합니다.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목소리로 우리에게 회개하고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분명한 용어로 말합니다. "그러자 세례 요한은 그에게 세례를 받으러 나온 무리에게 '독사의 무리들아! 누가 너희에게 다가올 진노를 피하여 도망하라고 경고했느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십시오....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모든 나무는 찍혀 불에 던져진다'"(누가 복음 3:7-9).

그러므로 세례 요한은 말씀의 편지에서 직접적이고 분명한 진술을 대표합니다. 이 말씀은 무엇보다도 회개하라는 가르침입니다. 이기심을 버리고 이웃을 정의롭고 관대하게 섬기라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계속해서 요한에게 와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때마다 요한은 외적인 삶의 행위에 대해 명쾌한 답을 주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두 벌 옷이 있으면 없는 사람에게 주라. 그리고 먹을 것이 없는 사람이 있으면 그를 먹여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리들에게는 "너희에게 정해진 것 이상을 거두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군인들에게는 "누구를 협박하거나 거짓으로 고발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너희의 임금에 만족하라"(누가 복음 3:11-14).

말씀의 문자적 진리를 대표하는 세례 요한이 사람들에게 <해야 할 일>을 알려준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가 제공하는 세례는 단순한 순종, 즉 말씀의 문자적 가르침에 순종하는 세례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세례가 뒤따라야 합니다. 요한은 "나는 참으로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지만, 나보다 더 큰 분이 오실 텐데, 그분의 신발 끈은 내가 풀기에 합당하지 않다.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과 불로 세례를 받는 것이 더 큰 세례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리고 불로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물세례를 넘어서

16.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참으로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지만, 나보다 더 강한 이, 내가 그 신발 끈을 풀기에 합당치 않은 이가 오시리니,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다."라고 하였다.

17. 그분의 손에 부채가 있으니, 그분은 바닥을 깨끗이 하고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로 태우시리라.".

18. 그리고 참으로 다른 많은 일로 권면하여 백성에게 복음을 전하였다."18.

19. 그러나 족장 헤롯은 그의 아우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스와 헤롯이 행한 모든 악으로 말미암아 그에게 책망을 받으니, 20.

20. 여기에 더하여 요한을 감옥에 가두었더라."21.

본질적으로 우리의 "물 세례"는 종교의 가장 기본적인 진리에 대한 소개입니다. 우리는 신이 있다는 것,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것, 십계명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배웁니다. 우리는 나누어야 하고, 도둑질해서는 안 되며, 거짓 증거를 해서는 안 되고, 우리가 가진 것에 만족해야 한다는 것을 배웁니다. 이런 점에서 '물'로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진리, 즉 진리에 입문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성령 세례와 불 세례는 물 세례의 입문 진리를 뛰어넘는 진리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성령"(더 높은 진리를 이해하는 능력)과 "거룩한 불"(그 높은 진리에 따라 살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우리 삶에 오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례 요한이 우리의 영적 성장을 시작하는 문자 그대로의 진리, 즉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진리를 가지고 우리 삶에 오신 것처럼, 예수님은 그 진리에 대한 더 깊은 통찰과 그 통찰에 따라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우리 삶에 오십니다. 우리는 물세례로 대표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배우는 것 외에도 성령세례와 불세례로 대표되는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를 배워야 합니다.

영적 성장 과정에서 우리의 태도가 행동보다 우선시되는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몸의 행동도 중요하지만 마음의 의도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시점에 도달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외적인 행동이 진정으로 선하기 위해서는 내적인 동기가 이기적인 야망에서 정화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행동과 말뿐만 아니라 생각과 감정에 관한 것이기도 합니다. 성서에 기록된 대로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주여, 내 입의 말과 내 마음의 묵상이 주님 보시기에 합당하게 되기를 원하나이다"(시편 19:4). 4

그러므로 요한의 세례는 우리에게 말씀의 문자 그대로의 진리를 소개합니다. 이 입문 진리는 우리가 '물'로 세례를 받는 것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알려줍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세례는 우리를 더 깊이 인도합니다. 그것은 더 높은 진리로 우리의 마음을 깨우쳐 주는 세례입니다. 성서에서는 이를 "성령의 세례"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마지막 세례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더 높은 진리로 우리의 마음을 깨우쳐 주실 뿐만 아니라 하늘의 사랑으로 우리의 마음을 채워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불의 세례"입니다. 5

쓸모없는 "왕겨"를 다루기

요한은 예수님께서 "성령과 불로" 우리에게 세례를 주러 오실 때, 그분은 타작마당을 "철저히 정결하게" 하기 위해 그분의 타작 부채를 사용하실 것이라고 덧붙입니다(누가 복음 3:17). 농부가 좋은 밀과 쓸모 있는 쭉정이를 분리하는 과정을 이미지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를 위해 농부는 탈곡 포크를 사용하여 곡물을 공중으로 던져 바람에 의해 가벼운 왕겨는 옆으로 날려 보내고 무거운 밀은 바닥으로 곧장 떨어지게 합니다. 이 작업이 끝나면 농부는 좋은 밀은 헛간에 모으고 쓸모없는 왕겨는 태워버립니다.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면 이것은 무서운 전망입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꺼지지 않는 지옥의 불 속에서 영원히 벌하시려는 것처럼 들립니다. 예수님이 오실 때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로 태우실 것"이라고 기록된 대로(누가 복음 3:17). 그러나 이 구절을 읽는 또 다른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진리의 성령과 사랑의 거룩한 불로 우리 삶에 오셔서 우리 안에 있는 악하고 거짓된 모든 것을 날려버리고 태워버리실 것이라는 영원한 약속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 삶의 쓸모없는 '겨'인 모든 거짓된 생각과 부정적인 감정은 꺼지지 않는 끝없는 하나님의 사랑의 불에 타서 없어지고 태워질 것입니다. 6

이 구절을 이런 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순수한 사랑이신 하나님은 아무도 벌하지 않는다는 가르침과 일치합니다. 오히려 모든 사람은 자유롭게 선택한 삶의 방식과 관련된 결과를 경험합니다. 지각된 범죄에 대해 "분노로 불타 오르는" 것을 선택하거나 경멸하는 사람에 대해 "불타는 증오"를 품는 사람들은 이미 꺼지지 않는 지옥의 불을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전 복음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형제를 바보라고 부르는 사람은 "지옥 불의 위험에 처해 있다"(마태 복음 5:22).

이를 염두에 두고 요한이 물로 세례를 베풀지만 예수님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풀러 오실 것이라는 선언을 다시 한 번 살펴볼 수 있습니다. 본질적으로 요한은 "내가 물로 세례를 줄 수는 있지만, 주님께서 성령으로 마음을 바꾸고 그분의 사랑의 불로 마음을 바꾸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헤롯의 욕망

그러나 우리가 이 거룩한 불을 마음대로 외면한다면, 우리는 이기적인 야망과 관련된 지옥 같은 갈망과 물질적 이득과 관련된 지옥 같은 욕망에 빠져들게 됩니다. 천상의 기쁨과는 정반대되는 이기적인 쾌락은 결코 충분하지 않습니다. 모든 중독성 있는 욕구와 마찬가지로 채워지지 않는 배고픔, 만족할 수 없는 끊임없는 갈망, 동경과 꺼지지 않는 '꺼지지 않는 불'입니다. 간단히 말해, 성서에서는 결코 달랠 수 없는 무한한 욕망인 "지옥불"로 묘사됩니다. 7

특히 악행이 잘 알려진 부패한 통치자 헤롯의 경우 더욱 그러했습니다. 특히 헤롯은 형의 아내를 차지하려는 음탕한 욕망에 불타고 있었습니다. 헤롯의 음란한 욕망은 너무 커서 아내와 이혼하고 이복형 빌립의 아내인 처제와 불법적으로 결혼했습니다. 앞서 세례 요한이 동생의 아내를 빼앗은 헤롯을 책망했을 때 헤롯은 듣지 않았습니다. 이제 요한이 곧 다가올 꺼지지 않는 불에 대해 경고하자 헤롯은 이를 개인적으로 받아들입니다. 세례 요한이 이제 너무 멀리 갔다고 생각한 헤롯은 그를 감옥에 가두기로 결심합니다.

세례 요한을 가두려는 헤롯의 욕망에 대한 문자 그대로의 이야기에는 우리 안에 있는 악하고 거짓된 것이 선하고 참된 것을 멸시하고 두려워한다는 영원한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헤롯이 세례 요한의 말을 듣지 않는 것처럼, 우리 안에는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이웃에 대해 거짓 증거하지 말라"와 같이 단순하고 직접적인 하나님의 말씀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 무언가가 존재합니다. "아무도 내게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다."라고 말하는 부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듣고 싶지 않아요." "십계명은 신경 쓰지 않아요." 또는 성서에 기록된 대로 "헤롯은 감옥에 갇힌 요한의 입을 막았다"(누가 복음 3:20).

실제 적용

상실감, 상처, 실망감이 마음속에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누군가에게 실망했을 때,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을 때의 기억일 수도 있습니다. 그 사건을 떠올릴 때마다 그 기억은 우리를 다시 한 번 '화나게' 합니다. 성서에서는 이를 "꺼지지 않는 불"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주님께 그 경험을 나와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으로 바꾸도록 도와달라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쓸모없는 "쭉정"이 됩니다. 예를 들어, 무시당하거나 무시당하는 기분이 어땠는지에 대한 기억은 다른 사람을 더 잘 인식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우리를 속였을 때의 기억은 모든 거래에서 정직하게 행동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주는 모닝콜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타오르는 분노의 불은 우리를 태우지 않고 오히려 우리를 일으켜 세우는 불로 대체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모두 우리 안에 어떤 불을 붙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세례 요한이 말했듯이 "그가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리라"고 했습니다.

세례 받으실 때 기도하시는 예수님

21. 모든 백성이 세례를 받고,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신 후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렸습니다.

22. 성령이 비둘기 같은 몸으로 그 위에 내려오시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라고 하셨다.

헤롯은 실제로 요한을 감옥에 가두려고 계획하고 있었지만, 요한이 예수님께 세례를 받을 기회를 얻은 후에야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예수께서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시는 동안> 하늘이 열리더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에피소드는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도 기록되어 있지만,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시는 동안 <기도>하셨다고 언급하는 것은 <누가복음>이 유일합니다. <누가복음>에서 기도를 강조하는 것은 이 복음의 주요 주제가 진리를 배우고, 믿음을 갖고, 기도로 하나님과 교제하는 데 초점을 맞춘 마음의 부분인 <이해>의 개혁이라는 전제와 일치합니다.

또한 이 에피소드에는 "하늘이 열렸다"라는 아름다운 말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 계시가 일어났으며, 그 계시가 신성한 말씀으로 표현되었음을 암시합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누가 복음 3:22).

이 에피소드는 우리 각자에게 우리 삶에서 기도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기도는 우리가 아버지를 찾아 내면을 향하여 인도와 교훈, 위로, 영감, 계시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입니다. 깊은 영적인 것을 찾기 위해 내면을 향하는 이 과정은 필수적입니다. 이 과정이 없다면 다른 사람을 섬기려는 우리의 노력은 우리 자신의 약하고 무너져 내리는 자아의 기초에 기초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우리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위대한 일을 우리의 자아가 방해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기도할 때 우리는 내면의 수다를 잠재우고 고요함 속으로 들어가 하나님과 대화하며 신성한 응답을 기다립니다. 히브리어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인 줄 알라"(시편 46:10).

“주께서 그분의 거룩한 성전에 계시니 온 땅이 그분 앞에서 잠잠하라"(하박국 2:20).

"땅"을 침묵시킨다는 것은 외부 세계의 염려를 잠시 제쳐두고 하나님 안에서 안식하는 것입니다. 간단히 말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을 만큼 오랫동안 자아의 목소리를 침묵시키려는 노력입니다. 이것이 관상 생활의 핵심입니다. 8

어떤 중요한 일을 시작하기 전에 첫 번째 단계는 기도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세례 장면은 이 아이디어를 아름답게 포착합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려고 하셨어요. 그러나 하늘이 열리고 계시와 영감이 임하기 전에 예수님은 그 첫 번째 중요한 단계를 밟아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기도해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 동안 하늘이 열렸습니다." 그제야 예수님은 공적 사역을 시작할 준비가 되셨습니다. 기록된 대로 "예수님 자신은 서른 살쯤에 사역을 시작하셨다".

이와 같은 가르침은 행동에 앞서 묵상을 하고, 공적 봉사에 앞서 개인적인 헌신을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 줍니다. 사역과 봉사는 고귀한 목적이지만, 영적인 목적의 지혜로 가득 차 있어야 합니다. 모든 성공적이고 가치 있는 행동 뒤에는 묵상과 기도에 바탕을 둔 삶이 있습니다. 9

오름차순 계보

23. 예수님 자신은 [나이] 서른 살쯤 되셨을 때, 요셉의 아들, 엘리의 아들이었다고 합니다.

24. 므닷, 레위, 멜기, 얀나, 요셉의 아들이었습니다.

25. 마타티아스, 아모스, 나움, 에슬리, 나가, 25.

26. 마아스, 마타티아스, 세메이, 요셉, 유다의 자손이다.

27. 요안나, 레사, 스룹바벨, 살라디엘, 네리, 27.

28. 멜기야, 아디, 코삼, 엘모담, 에르로부터....

29. 요세, 엘리에셀, 요림, 므낫세, 레위의 이름.

30. 시므온, 유다, 요셉, 요난, 엘리아킴의 자손 30.

31. 멜레아, 메난, 므난, 마타다, 나단, 다윗의 자손 31.

32. 이새, 오벳, 보아스, 연어, 나아손의 자손32.

33. 아미나답, 아람, 에스롬, 페레즈, 유다의 자손.

34. 야곱, 이삭, 아브라함, 다라, 나홀의 자손34.

35. 사룩, 라가우, 팔렉, 헤버, 살라의 자손.

36. 가이난, 아르박사드, 셈, 노아, 라멕의 자손.

37. 마투살라, 에녹, 야레드, 말렐, 가인의 자손.

38. 에노스, 셋, 아담,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의 세례 에피소드에 이어서 예수님의 족보에 대한 설명이 이어집니다. 예수님의 족보는 <마태복음>의 첫 장, 1-17절에 처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족보 기록에 따르면 예수님의 계보는 아브라함에서 다윗(14대), 다윗에서 바벨론 포로기(14대), 바벨론 포로기부터 그리스도 탄생(14대)까지 내림차순으로 나열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혈통의 계보입니다. 아브라함에서 시작하여 이삭, 야곱, 다윗, 솔로몬과 같은 이름을 거쳐 요셉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베들레헴의 마구간에서 태어난 아기 예수의 겸손한 탄생까지 내려갑니다.

그러나 <누가복음>에 나오는 족보에서는 모든 것이 예수님의 직계 조상인 요셉으로 시작하여 다윗, 야곱, 이삭, 아브라함 등의 이름을 거쳐 노아, 므두셀라, 아담,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오름차순의 정점에 있는 하나님으로 이어집니다.

<마태복음>에서는 내림차순으로, <누가복음>에서는 오름차순으로 서술한 영적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내적 의미에 대한 이해와 각 복음서의 특별한 초점에 있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아브라함의 아들인 다윗의 인간 아들이지만 아직 신적인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 예수의 정체성이 점진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주요 주제입니다. 따라서 <마태복음>은 하나님께서 하늘을 통해 내려오셔서 이 땅에 태어나실 때 인류의 수용 상태에 맞게 자신을 입히신 방식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됩니다. 다시 말해, <그분이 내려오셨다>입니다. 그분은 우리가 있는 곳에서 우리를 만나고 우리 가운데 거하시려고 우리의 수준으로 내려오셨습니다. 따라서 <마태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족보는 <하강>의 족보입니다.

그러나 <누가복음>에서는 우리의 초점이 다릅니다. 여기서 우리는 상승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 복음은 주님이 우리에게 내려오시는 방식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께로 올라가기 위해 노력하는 방식에 관한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복음>은 사가랴가 성전에서 향을 피우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향의 연기는 우리의 기도가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하나님을 향해 올라간다고 믿었습니다. 시편에 기록된 대로 "내 기도를 향처럼 주 앞에 드리며 내 손을 드는 것을 저녁 제사처럼 하소서"(시편 141:2). 10

따라서 <누가복음>의 오름차순 족보는 이 복음의 주요 주제 중 하나인 우리 이해의 개혁을 나타냅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가장 높은 곳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에게로 끌어올리는 것입니다.

<누가복음>은 그러한 '상승'을 이루기 위한 우리의 노력을 안내합니다. 삶의 용도를 염두에 두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읽고 묵상할 때, 우리의 이해는 중생하지 않은 의지의 자극을 넘어 점차적으로 높아집니다. 우리가 이렇게 할 수 있다는 사실, 즉 우리의 낮은 본성의 이기적인 욕망보다는 하나님 말씀의 더 높은 진리에 따라 살 수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기적입니다. 11

그래서 <누가복음>에 나오는 예수의 족보는 우리를 계속 위로 올라가게 합니다. "요셉에게서" 태어난 예수님으로 시작하여 "이새의 다윗", "아브라함의 이삭", "노아의 셈"과 같은 이름을 포함하여 오름차순으로 여러 세대를 거쳐 마침내 이 오름차순 족보의 정상에 있는 "하나님의 아담"(누가 복음 3:23-38).

그러므로 이것은 예수님의 왕족 계보에 대한 설명으로, 그분의 신성한 기원을 하나님 안에서 시작될 때까지 추적합니다. 지상에 내려오셔서 모든 약점과 연약함, 자기애와 이기심에 대한 모든 경향을 지닌 인간의 조건을 취하신 그분은 이제 단지 인간적인 것을 버리고 그분 안에 있는 신성과 하나가 되기 위한 투쟁을 시작하실 것입니다.

이것은 상승하는 것이지만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그분은 매번 육신의 유혹과 세상의 유혹에 굴복하고 싶은 유혹을 받으셨을 것입니다. 치열한 싸움이 될 것이지만 예수님은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의 문자 그대로의 진리("물세례")를 접하고 기도하는 동안 성령을 받으셨기 때문에 전투를 위한 준비가 잘 되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에게는 이것이 "불의 세례"의 시작이 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겪어야 할 전투입니다.

우리가 배운 진리는 기억 속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며, 삶의 시련 속에서 반드시 시험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에게는 바로 다음 에피소드에서 시작됩니다.

각주:

1참된 기독교 650: “우리는 말씀의 많은 구절에서 하나님이 화를 내고, 복수를 하고, 미워하고, 정죄하고, 벌을 내리고, 사람들을 지옥에 던지고, 유혹하는 것은 모두 악한 사람의 행동이며, 악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읽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결코 화를 내거나, 복수하거나, 미워하거나, 정죄하거나, 벌을 내리거나, 지옥에 던지거나, 유혹하지 않으시므로 누구에게도 악을 행하지 않으십니다."

2천국의 신비 2034: “온 세상에 더 이상 사랑이 없고 따라서 더 이상 믿음이 남아있지 않을 때, 주님께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참조 참된 기독교 종교 370:3: “우리의 구주이신 주님은 인간의 모습을 취하신 아버지 여호와이십니다. 여호와께서는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고 사람들이 그분께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내려와 인간의 모습을 취하셨습니다."

3아르카나 코엘레스티아 9372:3: “'유대 광야'는 주님께서 세상에 오셨을 당시 말씀이 있었던 상태, 즉 '광야', 즉 주님이 전혀 인정받지 못하고 그분의 하늘 나라에 대해 아무것도 알려지지 않을 정도로 어두움 속에 있었음을 의미합니다."그러나 모든 선지자들은 그분과 그분의 나라에 대해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참조, 묵시록 설명 730:4: “말씀에서 광야와 고독과 황무지가 여러 구절에 언급되는데, 이는 선이 없어 더 이상 진리가 없는 교회의 상태를 상징합니다.

이러한 교회의 상태를 '광야'라고 부르는 이유는 영의 세계에서 선이 없어 진리 안에 있지 않은 사람들이 거하는 곳이 광야와 같아서 평원에는 신록이 없고 밭에는 곡식이 없으며 동산에는 과실수가 없고 메마르고 메마른 땅과 같기 때문입니다."

4결혼의 사랑 146: “사람이나 천사의 사랑은 완전히 순수하지 않으며 그렇게 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주로 의지의 목적, 목적 또는 의도를 중요하게 여기시므로 사람들이 목적, 목적 또는 의도를 가지고 인내하는 한도 내에서 그들은 순결에 들어가고 점진적으로 순결에 가까워집니다."

5묵시록 설명 475: “요한이 세례를 베푼 '물'은 주님을 존중하는 말씀에서 나오는 지식인 입문 진리를 의미하고, '성령'은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신성한 진리를 의미하며, '불'은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신성한 선을 의미합니다."

6주님의 신성한 섭리 296[8]: “신의 섭리는 모든 사람, 선한 사람뿐만 아니라 악한 사람에게도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작용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목표를 위해 지속적으로 허용하고, 목표에 도움이 되는 것만 허용하며, 악을 지속적으로 조사하고, 뽑아내고, 제거하는 것으로 구성됩니다." 또한 참조 묵시록 설명 374:14: “그분이 '꺼지지 않는 불'로 태우실 겨는 지옥에서 온 모든 종류의 거짓을 의미하며, 그분이 멸망시키실 것입니다."

7참된 기독교 455: “지옥에 있는 사람들은 온갖 악의 쾌락, 즉 증오, 복수, 살인, 약탈과 도둑질, 언어적 학대, 신성 모독, 하나님을 부인하고 말씀을 모독하는 것에서 즐거움을 누립니다. 이러한 쾌락은 반성하지 않는 갈망 속에 숨어 있습니다. 악한 사람들은 이러한 쾌락으로 불타는 횃불처럼 불타오릅니다. 이러한 쾌락은 말씀에서 말하는 '지옥 불'의 의미입니다." 참고 문헌 영적 일기 2028: “피를 더 많이 흘릴수록, 이웃의 재산을 더 많이 긁어모을수록 그들은 더 많은 것을 원하며 결코 만족하지 못합니다. 그들의 굶주림은 점점 더 커져 천국 자체를 소유하고 싶을 정도까지 이릅니다."

8천국의 신비 2535:  “기도는 신과의 내적 대화인 동시에 계시에 다름 아닙니다." 참조 항목 천국의 신비 636: “'땅'은 자기애와 하늘에 반하는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9. 기도가 행동보다 선행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일반 군인의 자선"에 관한 다음 구절에 아름답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전투에 임하기 전에 그는 마음을 주님께로 향하고 목숨을 주님의 손에 맡기고, 그렇게 한 후에는 마음을 몸으로 내려놓고 용감해지며, 그때는 의식하지 못하던 주님에 대한 생각이 용감함 위에 여전히 마음속에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죽으면 주님 안에서 죽고 살면 주님 안에서 산다"(자선 단체 166).

10천국의 신비 10198: “향 연기는 기도의 승천을 의미하며, 일반적으로 예배의 모든 것의 승천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향의 연기가 성도들의 기도와 함께 [승천했다]'는 구절에서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요한계시록 8:4).”

11천국의 신비 863: “그러나 사람의 의지는 악한 욕망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믿음의 진리인 이해 부분을 구성하는 것이 의지의 악한 욕망에 빠져들지 않도록 기적적으로 조치를 취하셨습니다.... 이 기적적인 조항[사람의 마음의 이해 부분과 의지의 부분을 분리하는 것]이 없었다면 ... 아무도 구원받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또한보십시오 결혼의 사랑 498: “자신의 지성을 자신의 의지에 대한 사랑 이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그 사람은 인간이 아니라 동물에 불과할 것이며, 동물에게는 그러한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누구도 선택을 할 수 없으며 선택에 따라 선하고 유용한 일을 할 수 없으므로 아무도 개혁되어 천국에 인도되어 영생 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