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계 11: Study Chapter 5

     

마태복음 5장의 의미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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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fresco was created by Franz Xaver Kirchebner in the Parish church of St. Ulrich in Gröden, Italy, which was built in the late 18th century.

산상수훈(1부)


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으로 올라가시니, 앉으신 후에 제자들이 주께로 나아오니라.

2. 예수께서 입을 열어 그들에게 가르치시며 말씀하시니라,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6. 정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르게 될 것임이요.

7. 자비로운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자비를 베풀 것임이요.

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9.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10. 정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11.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가 복이 있나니, 이는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을 말할 때에는 너희가 복이 있느니라.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너희 상이 하늘에 가득하니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다음 에피소드가 시작되자 갈릴리뿐만 아니라 데카폴리스, 예루살렘, 유대, 요단강 너머 지역에서도 많은 무리가 예수님께 나아옵니다. 예수님은 군중을 보시고 산으로 올라가셔서 입을 열고 설교를 시작하십니다. 예수님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5:3).

이전 장에서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신 후 광야에서 일련의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유혹을 받으면 더 높은 목표나 영적인 목표가 위협을 받거나 좌절되거나 도전을 받습니다. 이 시기에 우리는 낮은 본성의 욕망, 즉 유전적인 악에 따라 행동하려는 욕망을 인식하게 됩니다.

이러한 유혹의 상태는 우리 삶에서 주님이 얼마나 필요한지, 하나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상기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이러한 인식은 우리의 영적 가난을 인정하는 진정한 겸손의 상태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성서에서는 이러한 겸손의 상태를 "심령이 가난한 상태"라고 부릅니다. 예수님께서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라는 말씀으로 교훈을 시작하신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이러한 겸손의 상태가 하나님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선과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길을 열어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자신의 영적 가난을 인정하는 사람들에 대해 "천국이 그들의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겸손의 상태에서 우리는 영적 가난을 고백하고 죄를 회개하면서 주님께 기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한 말과 행동에 대해 후회하면서 우리는 우리의 삶을 인도하고 인도하기 위해 주님의 자질이 얼마나 필요한지 깨닫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음 축복은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5:4).

주님께서 우리를 위로하실 때, 우리의 낮은 본성의 욕망은 정복되고 조용해집니다. 과도한 자기애와 세상 것을 사랑하려는 우리의 성향이 정복됩니다. 여기에는 조급함, 질투, 방어성, 분개, 분노, 경멸, 탐욕과 같은 것들이 포함됩니다. 이러한 낮은 본성의 욕망이 길들여지면 더 이상 일상생활을 지배하고 지배하지 않습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5:4).

헬라어 원문에서 "온유하다"는 단어는 프로아스 [πραΰς]로 "길들이다"라는 뜻입니다. 자신과 세상에 대한 지나친 사랑을 잠재우고, 정복하고, 길들인 사람들은 이제 주님께서 그들 안에서 그리고 그들을 통해 행동하실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좋은 삶을 살고 옳은 일을 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제 주님의 선하심을 갈망하고 주님의 진리에 목말라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르게 될 것임이요"(5:6).

이것은 다음 세 가지 축복으로 넘어가는 전환점이 됩니다.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일곱 번째 축복은 의의 삶을 구성하는 자선의 행위를 요약한 것입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하나님께로 돌릴 때,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향한 자비로 가득 차게 됩니다. 그리고 그 자비를 실천하는 한 우리는 더욱 자비로워집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다섯 번째 축복을 주실 때 "자비로운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자비를 얻을 것임이요"(5:7).

그러면 모든 관계에서 자비, 용서, 연민을 실천할 때 우리의 마음이 정화되어 다른 사람의 좋은 점을 볼 수 있게 됩니다. 즉, 우리는 그들의 하나님이 주신 특성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여섯 번째 축복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5:8) 1

이것은 일곱 번째 축복으로 이어집니다. 예수님은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십니다(5:9). 주님께서 우리 안에서 그리고 우리를 통해 행동하실 때, 우리는 평화의 상태에 있습니다. 우리의 내적 전쟁은 이제 끝났습니다. 주님의 말씀과 그에 따라 살고자 하는 우리의 소망 사이에는 더 이상 갈등이 없습니다. 히브리어 성경에 기록된 대로, "예루살렘에게 위로를 전하고 전쟁이 끝났다고 외치라"(이사야 40:2).

이 일곱 가지 축복은 순서대로 우리의 영적 가난을 인식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주님께서 우리 안에서 그리고 우리를 통해 역사하시는 안식일 상태로 끝나는 중생의 과정을 드러내는 신성한 시리즈입니다. 이 상태에서 주님은 우리의 하늘 아버지이시며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고 불립니다.

이것은 마지막이자 절정의 축복으로 이어집니다. 예수님은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5:10). 이 여덟 번째 축복은 영적 삶이 지속적인 과정임을 상기시켜 줍니다. 우리는 영적 발달의 각 단계와 관련된 축복을 경험하면서 동시에 더 높고 고상한 영적 삶의 단계로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더 높은 상태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더 미묘한 악을 드러내고, 싸우고, 극복해야 합니다.

따라서 신성한 진리의 더 밝은 빛에 의해 덜 분명한 악이 드러나면서 유혹의 시련이 다시 시작될 것입니다. 더 많은 내면의 악이 우리 안에서 일어나 생명을 위해 치열하게 자신을 방어하며 싸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자기중심적인 우려를 뒷받침하는 거짓 추론과 정당화에 굴복하지 않고 인내한다면 큰 축복이 있을 것입니다.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나를 위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크게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5:11-12).

여덟 번째 축복은 시리즈의 시작 부분으로 돌아가서 유혹이 우리의 믿음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줍니다. 유혹 속에서 겪는 고난은 힘들 수 있지만, 내면의 천국 공동체와 더 많이 접촉하고 의식을 확장할 수 있기 때문에 기쁜 마음으로 기대할 수 있습니다. 2

그 결과,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소박한 축복에 대해 더 큰 감사를 느끼고,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더 많이 인식하며, 손을 내밀어 봉사하려는 욕구가 커집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기뻐하고 심히 기뻐하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실제 적용

여덟 번째 축복은 영적 발전이 같은 것을 반복해서 더 깊이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갖는 나선형 커리큘럼과 같다는 것을 상기시켜 줍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다가오는 영적 도전을 장애물이 아니라 더 발전하기 위한 디딤돌로 보아야 합니다. 모든 도전은 우리가 믿는 바를 더 깊이 확인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실제적인 적용으로, 다음에 자아가 흔들리거나 조바심이 나거나 분노가 일어날 때 더 높은 의식에서 반응할 수 있는 기회로 생각하세요. 다시 말해, 지금은 천사들이 그 진리를 통해 여러분을 도와줄 것이며 주님께서 극복할 힘을 주실 것이라는 것을 알고 성서의 진리에 의지해야 할 때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유혹에서 승리했다고 해서 자존심을 높이거나 자존심을 부풀리거나 자신에 대한 잘못된 자신감을 갖지 마세요. 유혹은 나의 연약함과 하나님의 능력을 모두 드러낸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모든 능력은 오직 주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깨닫기 전까지는 유혹을 반복하게 될 것입니다. 3

좋은 일 하기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밖에 버려지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짓밟힐 뿐이니라.

14. 당신은 세상의 빛입니다. 산 위에 세워진 도시는 숨길 수 없다.

15. 등불을 켜서 등잔 밑에 두지 않고 등잔대 위에 두면,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비추느니라.

16.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하라."


산상수훈은 훌륭한 교훈을 제공합니다. 그러나 그 가르침의 정신에 따라 선한 일을 하고자 하는 열망이 없는 단순한 가르침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것은 마치 맛을 잃은 소금과 같고, 바구니 밑에 감춰진 등불과 같습니다. 모든 진리는 사용하기 위해 주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축복은 우리가 이웃에게 더 큰 봉사를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주어집니다. 이웃을 향한 사랑의 봉사에 참여할 때 우리가 경험하는 기쁨은 하늘의 모든 보상이기 때문에 그 봉사가 진정한 축복입니다. 4

이런 이유로 신성한 시리즈는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계속됩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맛을 잃으면 어떻게 맛을 낼 수 있겠느냐? 그러면 아무 쓸데없고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발에 짓밟힐 뿐입니다."(5:13).

소금은 조미료로 매우 유용합니다. 하지만 맛을 잃은 소금은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선을 행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는 인간은 맛이 없는 소금과 같습니다. 진실을 사용해야 합니다. 이것이 설교의 이 부분의 핵심입니다. 빛은 좋지만 반드시 사용되어야 합니다: "당신은 세상의 빛입니다."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언덕 위에 세워진 도시는 숨길 수 없습니다. 등불을 켜서 바구니 밑에 두지 않고 등잔대 위에 두면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빛을 준다."(5:14-15).

이 구절의 강조점은 진리를 배우는 것뿐만 아니라 진리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5:16). 5

영적인 가르침은 선한 일을 행하는 것 외에는 다른 목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선행은 주님께서 우리를 통해 일하실 때만 진정으로 선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설교의 이 부분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선행을 볼 때 모든 칭찬과 영광과 존귀가 하나님께 돌아가야 한다는 점을 상기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사람들이 여러분의 착한 행실을 보게 하되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에 관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에 관한 것입니다. 6

예수님, 성경의 내적 의미를 밝히기 시작하다


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8. 아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나 작은 뿔 하나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기까지 있으리라.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풀며 또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는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는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의 의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의를 능가하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21. 옛사람들이 살인하지 말라, 살인하는 자는 심판을 받으리라 선언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살인하는 자는 심판을 받으리라.

22.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형에게 함부로 노하는 자는 심판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형에게 라카라 하는 자는 공회의 심판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 어리석은 자여 하는 자는 불의 게헨나를 받으리라.

23. 그러므로 네가 예물을 제단에 드리고 거기서 네 형제가 네게 원망할 것이 있는 것을 기억하면

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네 길을 가라 먼저 네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25. 네가 그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속히 네 원수와 화목하라 원수가 너를 재판장에게 넘기고 재판장이 너를 시종에게 넘겨 감옥에 던져질까 두려워하라.

26. 아멘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네가 마지막 한 데나리온을 지불하기 전에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27. 옛적에 선지자들에게 이르시되 간음하지 말라 하셨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느니라.

28.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사람은 누구나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

29.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어 쫓으라 네 지체 중 하나가 실족하는 것이 네게 유익하고 온 몸이 게헨나에 던져지는 것이 네게 유익하지 아니하겠느냐.

30. 만일 네 오른손이 너를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어 네게서 내버리라 네 지체 중 하나가 멸망하고 온 몸이 게헨나에 던져지지 아니하는 것이 네게 유익하니라.

31. 또 누구든지 아내를 보내려거든 이혼하게 하라고 선언하였느니라.

32.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간음할 이유 없이 아내를 내어 쫓는 자는 간음하는 것이요, 또 누구든지 내어 쫓긴 여자와 혼인하는 자는 간음하는 것이니라.

33. 또 너희가 들었거니와 옛사람들에게 이르기를 거짓으로 맹세하지 말고 네 맹세를 주께 드려라 하였다 하였느니라.

34.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맹세하지 말라 하늘로 맹세하지 말라 하늘은 하나님의 보좌임이니라;

35. 땅으로도 맹세하지 말라 이는 그분의 발등상이요 예루살렘으로도 맹세하지 말라 이는 큰 왕의 성임이니라.

36. 너는 머리로 맹세하지 말지니 이는 네가 머리카락 하나도 희거나 검게 할 수 없음이니라.

37. 그러나 네 말은 예, 예, 아니오, 아니오로 하라 이것들 외에 무엇이든지 악에서 나온 것이니라.

38.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갚으라고 선포되었다는 것을 들었느니라.

39.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인을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도 돌려 대며, 누구든지 네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도 돌려 대라.

40. 또 누구든지 너로 재판하여 네 겉옷을 가지게 하려거든 그 겉옷도 가지게 하라.

41. 누구든지 너를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와 함께 두 리를 가라.

42.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를 외면하지 말라.

43.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신 것을 네가 들었느니라.

44.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축복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해치거나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진리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온전히 활용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말씀을 온전히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는 고지 사항으로 시작하여 성경을 읽는 방법에 대한 간단한 지침을 주셨습니다. 나는 파괴하러 온 것이 아니라 성취하러 왔다."(5:17).

예수님은 오심으로 히브리 경전의 예언을 성취하셨다는 점에서 한 차원에서는 율법을 성취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또한 율법에 더 높은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율법을 성취하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이 우리의 외적인 행동뿐만 아니라 내적인 태도, 즉 마음의 욕망에 대해서도 어떻게 말하는지 설명하셨습니다. 영적으로 이해될 때 율법은 외적인 행동을 규제할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내면의 삶을 개혁하는 데에도 유용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계명부터 말씀하십니다. "옛 사람에게 이르기를 '살인하지 말라'고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유 없이 형제에게 노하는 자는 심판의 위험에 처하리라"(5:21-22). 마찬가지로, 주님은 간음에 대한 율법의 더 깊은 의미를 드러내 십니다."옛 사람들에게 '간음하지 말라'고 말한 것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는 이미 마음에 간음한 것이라"(5:27-28).

이것은 새로운 가르침이지만 청중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결국에는 인간의 영과 천국으로 가는 길에 대한 더 깊은 가르침이 있을 것이지만, 사람들이 이러한 내면의 메시지를 완전히 이해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추상적인 진리보다는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문자 그대로의 교훈을 주는 것으로 충분할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맹세하지 말라고 가르치십니다( 5:33-37), 보복이 아니라 뺨을 돌리기 위해 ( 5:39), 다툼에 관여하지 않고 요구되는 것 이상을 제공하십시오 ( 5:40), 필요한 것 이상으로 나아가서, 구하는 모든 사람에게 주고, 빌리려는 사람에게 빌려주어야 합니다( 5:42).

이러한 가르침은 따르기 어렵지만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말씀 속에는 우리의 가장 깊은 믿음이 공격을 받을 때, 즉 공적인 영역에서뿐만 아니라 내부적으로 우리의 믿음을 파괴하려는 지옥의 영으로부터 박해를 받을 때 우리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한 더 높은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이럴 때 진리 안에 거한다면 우리는 그릇된 길로 인도되지 않을 것입니다. 7

예수님은 이러한 내면의 진리를 가르치는 대신 복수에 대한 욕망을 극복해야 할 필요성과 같은 더 명백한 문제에 집중하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했다는 말을 들었겠지. 그러나 나는 악한 사람에게 대적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네 오른뺨을 때리는 자에게 다른 쪽 뺨도 돌려대라"(5:38).

"뺨을 돌리는 것"은 우리의 믿음이 공격을 받을 때 우리가 내부적으로 하는 일입니다. 이러한 공격은 다른 사람을 통해서도 올 수 있지만,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파괴하고 그분의 진리의 능력에 대한 우리의 신뢰를 약화시키려는 보이지 않는 영적 세력을 통해서도 올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부적으로 뺨을 맞을 때마다 우리가 진실이라고 알고 있는 것을 굳건히 지켜야 합니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떤 말이나 속삭임, 암시도 우리를 해치거나 우리의 믿음을 파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악이 우리를 싸움에 끌어들이지 않는 한, 우리는 하나님의 보호 아래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선하심과 진리 안에 머무는 한 악은 우리에게 영적인 해를 끼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에 저항할 필요가 없습니다. 8

그러나 우리의 자연스러운 삶에서는 더욱 신중해야 합니다. 부탁하는 모든 사람에게 줄 수도 없고, 빌리려는 모든 사람에게 빌려주어서도 안 됩니다. 무분별한 자선은 다른 사람에게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자원을 잃게 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도둑, 사기꾼, 사기꾼이 우리를 이용하도록 허용해서는 안 됩니다. 무고한 피해자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신고되고 기소되어야 하며, 유죄 판결을 받으면 책임을 져야 합니다. 범죄 행위를 무시하거나 악의적인 의도를 지지하는 것은 악인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으며 사회에 해를 끼칩니다. 9

간단히 말해, 우리는 외적인 면에서는 잔인함, 사기, 불의에 저항해야 합니다. 그러나 내면에서는 평정심을 잃지 않고 흔들림 없이 평온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애정의 이 수준에서는 우리의 믿음을 빼앗고 행복을 파괴하는 악은 하나님만이 저항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악에 저항할 필요가 없습니다. 10

이것은 예수님께서 나중에 말씀하실 보다 내면적인 교훈입니다. 지금은 증오와 보복, 복수의 상태에 빠지지 말라는 간단하고 분명한 교훈을 마음에 새기는 것이 예수님의 임무입니다. 대신 예수님은 그들에게 더 높은 의식으로 일어나라고 부르십니다. 예수님은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미워하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축복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고 너희를 악의적으로 이용하고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5:43-44).

실제 적용

산상수훈의 이 부분에서 예수님은 군중들에게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히브리 율법에 대한 새로운 대응 방법을 제시합니다("눈에는 눈, 이에는 이").출애굽기 21:24).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비슷한 파괴적인 행동, 즉 악을 악으로 갚는 것으로 자동적으로 반응하는 대신 다른 종류의 반응으로 새로운 차원의 의식으로 일어나라고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네 오른뺨을 때리는 자에게 다른 쪽 뺨도 돌려대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를 실제로 적용해보면, 자존심이 상처받거나 좌절하거나 공격을 당했을 때 모욕에는 모욕을, 상처에는 상처를, 잘못에는 잘못을, 악에는 악을 돌려주고 싶은 유혹을 받을 때마다 거기에 휘말리지 마세요. 대신 더 높은 이해가 감정적 상처를 지배하도록 하세요. 진리에 대한 이해가 낮은 본성의 충동을 지배하고 길들일 수 있도록 하세요. 더 높은 반응을 선택하세요. 11

"그러므로 너희는 완전하라"


45. "이는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게 하려 함이니, 이는 그분께서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고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시게 하심이라.

46.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느냐? 세리들도 그렇게 하지 않습니까?

47. 그리고 너희가 너희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면, 너희는 [다른 사람들]을 넘어서서 무엇을합니까? 세리들도 그렇게 하지 않습니까?

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같이 너희도 완전하라."


예수님은 담화를 계속하시면서 우리가 다른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상대방을 친구로 인식하든 적으로 인식하든 공정하고 정의롭게 대해야 합니다. 이 점을 설명하기 위해 예수님은 "그분은 선인과 악인에게 해를 비추시고, 의로운 사람과 불의한 사람에게 비를 내리신다"고 말씀하시며 하나님의 공평하심을 설명하십니다(5:45). 상징적으로, 이것은 편견 없이 모두에게 비추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비가 모든 사람에게 내리듯이 모든 사람에게 제공되는 하나님의 진리를 의미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편견 없고 공평한 방식으로 모든 사람에게 선의를 베풀라는 부름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 듣는 사람들에게 가족, 친구, 이웃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공정한 마음과 자선을 베풀 것을 요청하고 계십니다. 편견에서 벗어나 공평하게 대하라는 말씀입니다.

해와 비처럼 그들의 선행은 모든 사람에게 미쳐야 합니다. 결국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은 쉽습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모든 사람에게 자선을 베풀어야 합니다. 예수님 말씀처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보상이 있느냐? 세리들도 그렇게 하지 않습니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5:46).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은 쉽습니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주님에게서만 나오는 또 다른 종류의 사랑이 있습니다. 그것은 원수를 포함하여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이 쉽지 않고 더 많은 영적 연단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시면서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5:48).

이 구절은 명령이 아닌 약속으로 번역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온전하라" 대신 "너희는 온전해야 한다"로 번역되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에게 중요한 것은 완전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천사들조차도 최종적인 완전의 상태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인내할 수 있고, 노력할 수 있으며,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 같이" 완전해지기 위해 노력할 수 있습니다. 12

성경 시대 사람들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완벽을 향한 노력은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이기심을 극복해야 하고, 원한을 내려놓아야 하며, 관대함이 탐욕을 이기고, 용서가 복수를 대신해야 하고, 사랑이 증오를 이겨야 합니다. 하나님 없이는 그 누구도 이 모든 것을 이룰 수 없으며, 완벽은 달성할 수 없는 목표가 됩니다.

이러한 영적 완전성에 도달하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도움으로 악을 버리고 영혼의 연마를 위해 노력하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 출발점은 하느님께 죄를 짓는 악을 기꺼이 피하고, 신성한 진리를 위해 기도하고 받아들이며, 마침내 그 진리에 따라 살려는 의지입니다.

이 모든 것이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에 담겨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주님의 인도하심을 점점 더 신뢰하게 될 때, 즉 주님이 모든 사랑의 감정, 모든 고귀한 생각, 모든 훌륭한 행동의 원천임을 인정하게 될 때, 우리는 이 생과 내세에서 지속적으로 그리고 점점 더 온전해질 것입니다. 13

각주:

1AE 340:10: “'마음이 순수한' 사람은 사랑으로 선한 사람입니다." 참조 항목 SE 2783: “사람은 사람 안에 있는 선을 사랑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주님을 사랑하면 주님의 것이 아닌 선이나 믿음의 것은 아무것도 없으므로 이웃을 통해 주님도 사랑받습니다."

2천국의 신비 6611: “중생을 허용하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위로 올라가므로 항상 더 내면적인 천국 공동체 안으로 들어갑니다. 주님께서는 중생하는 사람들의 영역이 주로 악과 거짓이 견디는 유혹을 통해 그러한 공동체로 확장되도록 하십니다. 유혹을 받는 동안 주님은 천사들을 통해 악과 거짓에 맞서 싸우시며, 이런 식으로 사람은 점점 더 많은 천사들의 내적 공동체로 이끌리게 됩니다. 일단 사람들이 더 많은 내부 공동체로 이끌려 들어가면 그곳에 머물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이 그들에게 더 확장되고 고양된 지각 능력을 부여합니다."

3AC 1661:4: “사람들이 선과 진리가 자신에게서 나오고 악과 거짓에 저항하는 힘이 자신에게서 나온다고 생각할 때, 그들이 싸우는 선과 진리는 그렇게 보일지라도 선과 진리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악과 거짓을 이기는 것은 오직 주님 한 분뿐인데도 마치 자신들이 이긴 것처럼 자기 공로를 승리에 두고 영광을 돌리기 때문입니다." 참조 자료 AC 2273:2: “사람들이 극복하는 유혹은 다른 모든 사람들이 자신보다 더 합당하고 천국보다는 지옥이라는 믿음으로 참석합니다..... 유혹 후에 이와 반대되는 생각이 든다면, 그것은 그들이 극복하지 않았다는 표시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이 아무 공로가 없다고 믿을 정도로 제정신이 될 때까지 비슷한 유혹, 때로는 더 슬픈 유혹을 겪을 것입니다."

4AC 8002:7: “주님께서 선을 행하는 자에게 하늘에서 상이 있을 것이라고 여러 번 말씀하신 이유는 사람들이 거듭나기 전에는 상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중생한 후에는 다릅니다. 보상을 받기 위해 이웃에게 선을 행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은 분개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선을 행할 때 기쁨과 행복을 느끼지만 보상은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내적 의미에서 '보상'은 이웃에 대한 자선과 함께 따르는 애정에서 오는 기쁨입니다."

5천국의 신비 9207: “'땅의 소금'은 선을 향한 소망이 있는 진리를 의미하며, '맛없는 소금'은 선을 향한 소망이 전혀 없는 진리를 의미합니다. 그러한 진리가 무가치하다는 사실은 맛이 없어져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밟히는 것 외에는 아무 쓸모가 없는 소금의 개념으로 묘사됩니다. 선에 대한 열망을 갖는다는 것은 선을 행하고자 하는 열망이 있고 그로 인해 선에 동참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6새 예루살렘의 생활론 29: “말씀은 아무도 스스로 선한 일을 할 수 없고 오직 주님으로부터 선한 일을 한다고 가르칩니다. 예수님은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포도나무를 가꾸는 자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거하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그러하니라'(요한 복음 15:1-6).”

7AC 9049:4-6: “주님은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을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도 돌려대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이 문자의 의미에 따라 이해되지 않아야한다는 것을 누가 알 수 없습니까? 누가 오른쪽 뺨을 때리는 사람에게 왼쪽 뺨을 돌릴 것입니까? 그리고 누가 그의 외투를 빼앗는 자에게 그의 외투를 줄 것입니까? 그리고 누가 구하는 모든 사람에게 그의 재산을 줄 것인가? 그리고 누가 악에 저항하지 않겠습니까? .... 여기서 다루는 주제는 세상의 생명인 자연적인 생명이 아니라 영적인 생명, 즉 신앙의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악에 저항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악이 진리와 선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기 때문이며, 그들은 주님의 보호를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8AC 9049:6: “그러므로 악에 저항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진리와 선의 지배를 받는 사람들에게는 악이 전혀 해로운 영향을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며, 그들은 주님의 보호를 받기 때문입니다." 또한 "AE 556: “악에 저항하지 말라는 교훈은 폭력으로 저항하거나 보복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천사들은 악과 싸우지 않고 악을 악으로 갚지 않으며, 주님의 보호를 받고 있기 때문에 지옥의 어떤 악도 그들을 해칠 수 없기 때문에 허용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네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도 돌려대라'는 말씀은 내면의 진리에 대한 인식과 이해에 해를 입히려는 사람이 있다면 노력하는 한도 내에서 허용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뺨'은 내적 진리에 대한 인식과 이해를, '오른쪽 뺨'은 그것에 대한 애정과 그에 따른 인식, '왼쪽 뺨'은 그것에 대한 이해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천사들이 악과 함께있을 때 천사들이하는 일입니다. 악은 천사들로부터 선과 진리의 어떤 것도 빼앗을 수 없지만, 적대감과 증오와 복수로 불타는 사람들로부터는 이러한 악이 주님의 보호를 피하고 격퇴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이 말씀의 영적 의미이며, 지금 말한 숨겨진 것들이 저장되어 있으며, 특히 영적 의미에 따라서 만 말씀을 인식하는 천사들을위한 것입니다. 이 말씀은 또한 악이 그들을 타락하게 하려고 할 때 선한 세상 사람들을위한 것입니다."

9천국과 지옥 390: “악한 자를 벌하여 그들이 개혁되도록 하는 재판관은 ... 이웃을 사랑하라." 참조 천국과 지옥 390: “사람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구성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은 악한 사람과 선한 사람을 똑같이 사랑합니다.... 그러나 악인에게 선을 행하는 것은 선인에게 악을 행하는 것이며, 그것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10AC 9049:6: “이제 주님의 말씀이 내적 의미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려 드리겠습니다. 내적 의미는 거짓으로 믿음의 진리를 파괴하려는 사람들, 즉 유혹에 빠진 사람과의 영적 삶을 취급합니다.... 그러므로 악에 저항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악이 진리와 선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기 때문이며, 그들은 주님의 보호를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참고 자료 AE 695:19: “주님은 유혹의 싸움에서 사람을 위해 저항하고 정복하십니다."

11TCR 588:1-2: “중생을 위해 사람들은 하늘의 천사들이있는 빛으로 거의 이해를 높일 수있는 능력을 부여받습니다.... 이것은 태어날 때부터 의지가 악, 심지어 엄청난 악으로 기울어지기 때문입니다. 의지가 이해에 의해 억제되지 않고 대신 자유 로워지면 사람들은 큰 악으로 돌진 할 것이고, 그들 고유의 야만적 인 본성에서 그들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모든 사람들을 멸망시키고 학살하고 [trucidaret] 그들의 욕망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더욱이 사람들이 자신의 이해를 따로 분리하여 그것을 통해 자신의 의지를 완성할 수 없다면, 그들은 전혀 인간이 아니라 동물이 될 것입니다. 이해와 의지가 분리되지 않고 이해가 의지보다 높아질 수 없다면 ... 그들은 이성으로 행동할 수 없고 본능으로만 행동할 수 있을 것입니다."

12결혼의 사랑 71: “인간이나 천사의 사랑은 결코 완전히 순수해질 수 없으므로 부부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의지의 의도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의도를 가지고 인내하는 한, 그 사람은 부부 사랑의 순결과 거룩함 속으로 들어가고 점차 발전하게 됩니다."

13천국의 신비 894: '이제 나는 완전해졌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완전히 거듭난 시기는 명확하게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실 모든 사람에게는 단순한 상태뿐만 아니라 악과 거짓의 상태가 무한히 존재하며, 재발하지 않도록 처리해야 하는 다양하고 복잡한 상태도 존재합니다. 어떤 상태에서는 개인이 더 완벽하다고 할 수 있지만, 수많은 다른 상태에서는 그렇지 못합니다. 일생 동안 중생하고 주님에 대한 믿음과 이웃에 대한 자선이 삶 속에 존재했던 사람들은 다음 생에서도 항상 완전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