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Ⅴ. 구속 그 자체는 하나님께서 육을 입고 오시지 않고는 이루어 질 수 없는 것.
앞 논제에서 구속은 순수한 신성에 속한 일이라는 면을 보여 주었으며, 따라서 전능하신 하나님에 의하지 않고는 이루어질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 육을 입으시고 사람이 되심으로만이 수행될 수 있다는 이유는 무한하신 본질로서의 여호와 하나님은 가장 순수하시고 처음 것들 안에 있기 때문에 지옥에 들어 갈 수도, 가까이 갈 수도 없기 때문이다.
신성 자체로 계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만약에 지옥 안에 있는 자들에게 호흡만 내쉬어도, 한 순간에 그들은 죽어 없어질 것이다. 모세가 하나님을 보고 싶어 할 때, 하나님께선 "어느 누구도 나를 보고 살수 없기 때문에, 나의 얼굴을 볼 수 없느니라" (출애굽기 33:20)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세는 하나님을 볼 수도 살 수도 없었는데, 하물며 가장 외적인데 있고, 천한 것들 속에 있으며,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지옥 안에 있는 자들은 더욱 그렇게 할 수 없다. 그들은 가장 낮은 자연적인 자들이기 때문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성을 입으심으로 가장 외적인 육을 옷 입지 않으셨다면, 어떠한 구속도 이루지 못하고 헛되게 되었을 것이다. 전쟁을 위해 군대를 투입하고 적에게 접근시키지 않고서 어떻게 적을 공격할 수 있겠는가? 어느 누가 몸에는 갑옷을 입거나, 머리에는 헬멧을 쓰거나, 손에는 창을 들지 않고, 사막에서 용이나, 구두사나 바실리스크 (도마뱀)들을 물리치고 파괴 할 수 있겠는가? 어느 누가 고래를 잡을 배나 적당한 도구도 없이 어떻게 바다에서 고래를 잡을 수 있겠는가? 이와 유사한 일들이 적합한 비교가 되지 않을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인성을 먼저 입으시지 않고는 전능하신 하나님과 지옥과의 전쟁이 일어 날수 없다는 것으로 예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과 지옥과의 싸움은 이론가와 논쟁 가의 다툼처럼 말싸움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한 싸움으로는 어떠한 효과도 얻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싸움은 주님의 참된 생명의 본질이신, 신성한 선으로부터 신성한 진리에 속한 영적 싸움이었으며, 시각적 방법으로 들어오시는 주님의 유입에는 지옥에 있는 어느 누구도 대항할 수 없는 것이다. 주님에게는 그러한 능력이 있으며, 지옥적인 영들은 이를 순전히 지각하기만 해도 멀리 달아나며, 스스로 깊은 대로 몸을 던지고, 몸을 감추고자 동굴 속으로 기어들어 가는 것이다.
이것은 다음의 내용과 같다.
"주께서 땅을 진동시키기 위해 일어나실 때에, 여호와의 두려움으로 그들이 바위 동굴과 토굴 속으로 들어가리라." (이사야 2:19)
"그들은 모두 산들의 바위와 동굴 속으로 숨을 것이요, 산들과 바위들에게 말하리라. 우리 위에 떨어지라, 그리고 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면전과 어린양의 진노로부터 우리를 감추어라." (요한계시록 6:15-17)
1757년에 최후 심판을 실행하셨던 신성한 선으로부터 있는 주님의 능력이 무엇인가는 그 심판에 관한 소책자 안에 기록된 것으로 분명하다. 주님은 지옥적인 영들이 영들의 세계에서 점령하고 있었던 산들을 그들이 있던 곳으로부터 찍어 내었고, 그들을 멀리 그리고 널리 흩으려 버렸으며, 어떤 이는 시야에서 벗어나 가라앉아 버렸고, 홍수로 그들의 도시와 마을과 밭들이 범람하게 하였으며, 그들의 땅들이 깊이 무쳐 버렸고, 그들의 주민들과 함께 소용돌이와 습지와 늪지로 던졌고, 그 밖의 여러 가지 일들을 신성한 선으로부터 신성한 진리의 능력으로 주님만이 행하셨다.